양말선물세트

개그우먼 이수지가 최근 우리 사회 조기 교육 열풍을 패러디해 화제가 된 유튜브 영상에서, 엄마는 물건을 던지며 떼를 쓰는 아이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말썽 부리는 아이를 혼내기보다는 마음을 읽어주는 ‘감정 존중 양육’은 200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육아법.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 정서적으로 건강한 인격체로 길러내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부서지는 아이들’(원제 The Bad Therapy)을 쓴 미국 탐사 저널리스트 애비게일 슈라이어(47)는 말한다. “우리는 과거 부모 세대의 엄격한 양육법 때문에 받은 상처를 과잉 보상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왜 온화한 양육 방식으로 키운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과거 어느 세대보다 더 많은 심리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어째서 끝없는 절망의 동굴에 빠지게 되었을까?”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의 40%가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 치료받았다. X세대의 경우 26%인 것과 대조되는 수치다. 미국 아이들 중 10% 이상이 ADHD 진단을 받았고, 아이들의 약 10%가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요즘 10대는 이런 진단명과 자신을 동일시해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올리기도 한다.

10년 전 미국 웹진 ‘슬레이트’의 필자 중 한 명은 교육 수준 높은 부모들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설명할 때 ‘도덕적 언어’ 대신 ‘치료적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편식하는’ 아이를 혼내지 않고 ‘음식회피증’이라는 진단명을 받아들이고, 아이가 옷에 붙은 태그가 따갑다고 불평하면 ‘괜찮아. 곧 익숙해져’ 하는 대신 태그 없는 부드러운 옷을 사 주고 아이의 ‘감각처리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이다. 저자는 트라우마 없이 아이를 키우겠다며 “쇼핑하듯 진단명을 찾아다니면서” 심리 전문가에게 양육을 외주 주는 부모들이 결국 부서지기 쉬운 ‘유리 멘털’을 가진 성인을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트라우마’란 원래 참전 군인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쓰인 개념이지만, 어느 순간 모든 아이를 ‘트라우마의 피해자’로 보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아이의 회복력을 질식시킨다는 것. 2021년 미국 공립학교에서 도입한 ‘사회 정서 학습(Social-Emotional Learning)’이 이를 부추긴다. 학생들의 ‘감정 체크인’으로 수업을 시작하고, 과제를 늦게 내도 감정에 상처를 입힐까 봐 성적을 깎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실현한다며 학교 폭력 가해자를 ‘고통을 겪는 아이’로 보고 징계하지 않는다…. 이 결과 최근 10년 새 교실에서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교사에게 욕설하는 등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심리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감정을 돌보는 행위는 그 감정을 더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에 집중하라고 가르치면 아이들은 ‘더’ 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날마다 어느 정도는 감정을 억누른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어른의 의무라고 말한다.

아동 심리 치료 유행에도 우려를 표한다. 심리 치료는 내담자가 적극적일 때 효과가 있고, 상담자와 내담자 간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고통을 반추하는 행위가 오히려 회복을 방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심리 치료사에게 맡겨진 아이는 이렇게 믿게 된다. ‘부모는 나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 해결은 부모 역량 밖의 일이다’.

연구에 따르면 백인 우월주의, 네오나치 등 극단적 우월주의 집단에 빠져드는 젊은이 대다수는 진보 성향 가정에서 자랐다. 권위를 포기하고 끝없는 선택권을 주는 부모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가이드라인’과 ‘권위’에 대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대본’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극단주의 단체에 매혹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닫고 당신 가치관에 따른 규칙을 정한 후 자녀에게 따를 것을 요구하라”고 말한다. 감정을 곱씹는 대신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가르치라 제안한다. 평범한 행동을 질환이라 진단하지 말고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정신과 약을 먹이지 말라고도 말한다.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한 논픽션이지만 ‘내 아이 마음을 다치게 했다’며 학부모가 교사를 신고해 극단적 양말선물세트 선택으로 몰아간 일이 연달아 일어난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가 쓴 ‘나쁜 교육’ ‘불안 세대’ 등과 함께 읽어도 좋겠다. 세 아이의 엄마인 저자는 취재 과정에서 깨닫는다. “우리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양육하면 아이들이 잘 자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꽃이 달콤한 설탕 가루 속에서 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꽃은 흙에서 가장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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